- [성경본문] 요한복음2:1-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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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의 첫 이적의 의미(요2장 1-11절)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두 번 째도 아닌 처음으로 이적을 행하신 사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겠습니까? 첫 이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증거해 주는가? 첫 이적의 증거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빌립을 제자로 부르신 뒤 사흘 째 되던 날, 주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아주 가까운 가나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께서 한 결혼 잔치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도착해 보니 어머니 마리아가 일손을 돕기 위해 분주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혼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걱정하던 차에 주님께서 도착하신 것을 본 마리아는 아들 예수께 이 문제 해결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 하인들에게 무슨 명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인들이 그대로 했습니다.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 명하셨습니다. 하인들이 그대로 했습니다. 연회장이 물이 변해서 된 포도주 맛을 보고 신랑에게 전보다 더 좋은 포도주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11절을 보면 요한은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신 처음 이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적을 표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에서 주님의 이적을 나타내는 단어로 능력이라는 뜻의 '두나미스'란 말을 주로 써왔습니다. 즉 주님께서 능력을 행하셔서 큰 역사가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는 뜻의 '세메이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세메이어라는 말은 다른 말로 '싸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진 사건이요, 주님께서 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려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으로 놀라운 일을 나타내실 때는 그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때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그 놀라운 사건 때문에 놀라고 흥분하고 감격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 담겨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베푸신 이적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번째 예입니다. 우리는 이 표적을 살핌으로써 이적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표적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 이적의 의미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증명(증거)해주었습니다.
1 절에 사흘 째 되는 날... 사흘 되던 날이라고 번역하는 좋다.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인가? 사흘째 되던 날이 언제인가?
이것을 학자들이 유대나라는 결혼식을 일주일씩 하는데 유대인의 결혼예식 시작된 지 사흘째 되었다는 것입니다.(주석에도 나옴) 이것은 정통한 해석이 아니고 정통한 해석은 1장 29절을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그 다음 날이 이튿날입니다. 그러므로 사흘째 되던 날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후 사흘 째 되던 날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으시고 첫날, 그 이튼 날, 둘째 날 제자들을 택했습니다. 셋째 날 첫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세례 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세례가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사흘 째 되는 날은 두 가지로 봐야 합니다.
첫째는 세례 받으신 지 사흘 째 되는 날, 또 달리 말하면 공생애가 시작된 지 사흘 째 되던 날, 그러니까 공생애 사흘 째 되는 날을 가리킨다. 혹은 세례 받은지 사흘 째 되던 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례 받으신 첫 날부터 쭉 사역을 시작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흘 째 되던 날 예수님의 공생애 첫 사역의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갈릴리 가나……. 가나가 두 곳 있는 줄 아시죠?
북 쪽에 두로 지방에 갈릴 리가 있습니다. 지도 보면 나옵니다.
남 쪽 갈릴리에 또 가나가 있습니다. 두로 갈릴 리가 아니고 두로의 가나, 갈릴리의 가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남쪽의 가나에서 행하신 이적이다 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장소와 시간을 명기하느냐? 장소는 갈릴리 가나, 시간은 공생애 세 번째 날입니다. 이렇게 장소와 시간을 명시하시는 목적은 두 가지 첫 이적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두 번째에는 역사성 입증을 위해서입니다.
이 신비한 사건이 실제로 갈릴리 가나라는 역사적 장소에,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셋째 날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역사성 입증과 첫 이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장소와 시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멘.
근데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흘 되던 날, 3절에서(2절은 중요하지 않음)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이게 왜 문제로 등장이 되느냐? 답) 유대나라는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를 못합니다. 잔치의 필수품입니다. 물 대용입니다.
유대나라는 물이 없습니다. 땅을 파면 기름은 나올 지 연정 물은 안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음식 먹을 때 상당히 힘듭니다. 대신 포도주를 음료로 먹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잔치의 꼭 필수품이 포두주인 것입니다. 물대용입니다.
요한복음 2장 가나 혼인잔치 첫 이적의 증거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설명 계속 중)
물대용으로 이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잔치의 필수품 포도주가 없으니까 잔치를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하신 말이 중요합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포도주가 저들에게 없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를 사용하라는 뜻도 아니고 돈을 달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 포도주가 없다는 말은 이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세요?
이 말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이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의문이 일어납니다. 그 의문은 지금 이게 첫 이적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예수님이 전에 이적을 일으킨 적을 본 일이 없습니다. 첫 이적이므로 예수님의 이적을 마리아는 경험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적을 요구할 수 있느냐?
한번 본 일도 없는데 이게 의문입니다.
첫 이적이므로 전에 이적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이적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적을 요구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이적을 요구할 수 있느냐?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체험한 자(사람)이기 때문에 …….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진짜 체험한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강조할 사항은 무엇인고. 하면 마리아가 첫 이적인데 어떻게 알고 이적을 행해 달라고 요구를 할 수 있느냐? 그 설명을 하면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실제 체험한 사람이므로 그런 요구할 수 있다는 이 사항이 중요합니다.
딴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령잉태를 믿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안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잊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말은 그러므로 마리아의 이 간구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세요.” 이 말이 아닙니까? 포도주가 없다 그 말이 무어에요? 이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세요. 마리아는 두 번을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마리아는 두 번 증거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12살 때 성전에 예수님 올라가셨을 때, 48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서 물어서 갔더니 성전에 예수님이 게셨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물었습니다. 어찌 이렇게 했느냐?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어찌 모르셨나이까?” 이 말을 듣고 다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만은 맘에 두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51절에 기록)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증거입니다.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부르는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 못 부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것은 참람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집이라고 하는 데에서 마리아는 수긍했다는 말입니다.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맘에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그렇지 …….이때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무어라고요?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여기서도 포도주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이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세요. 여기서도 간접으로 증거를 합니다.
첫 이적의 중요성이 무엇이냐?
첫 이적의 중요성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증거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두 가지를 증거 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을 증거 했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이적 능력자이다. 이것을 증거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행함으로 창조 능력자이다 는 두 가지를 증거 한 것입니다.
체험자 마리아의 우주적인 선포입니다.
여러분! 동정녀 탄생을 실제로 체험한 마리아가 한번쯤은 증거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체험자 마리아의 우주적인 선포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험한 자가 했는데 누가 방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이 선포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체험자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체험자는 유일합니다. 체험자가 선포했는데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창조적인 능력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세요. 이것이 마리아의 간구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기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마리아가 예수님을 믿어주었으니까 대견합니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입니까? 대견한데 예수님의 대답 4절입니다.
대답이 썩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여자여! 예수님은 이런 말을 쓰십니다. 거기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게 마치 여자여 나와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잇습니까? 이렇게 오해하기가 쉬어요.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여기 여자여! 라는 말은 “구나인”이라는 말인데 당시에 공석에서 왕이 왕모나 왕비를 높여 부르던 칭호입니다. 공칭(경칭)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여자여! 어머니는 사석에서 부르던 칭호라면 이것은 공석에서 부르는 칭호입니다. 오늘 우리 개념으로 이해하는 저 여자... 라고 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여인이여! 아주 높은 왕이 공석에서 부르는 칭호입니다. 그러니까 언어의 개념이 지금 하고 옛날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개념으로 여자여 하면 안 됩니다.
그 때 당시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현장 보존의 원칙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은 해석을 하면 “나에게와 당신에게 무슨” 이게 본문의 단어 구성입니다. 무엇이 무슨 이라는 말입니까? 포도주 없다는 일이 ...포도주가 없다고 하는데 포도주 떨어진 것 하고 당신에게와 나에게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구에게 상관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까? 연회장이나 신랑에게 상관이 있는 일이다 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명시를 해주십니다. 여기 이 본문을 잘 잡아야지 잘못 잡아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자여 이 말은 공석에서 높여 부르는 칭호이므로 ..공석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왜 하셨는가? 두 가지 목적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사건의 공석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건의 객관화 때문에, 무슨 말인고 하면 포도주 만드는 일은 첫 이적 아닙니까? 첫 이적이므로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데 이 이적을 사석화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건의 공석화, 객관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 이적을 목적으로 바로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동정적인 차원에서 협력차원에서 이적을 요구합니다. 이게 어머니의 포도주 만들어 달라는 성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적은 동적적인 차원에서 행해진 이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적의 목적은 메시야 적인 구속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 동정적인 차원에서 이적을 행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협력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이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척 이적인데 메시야 공생애 청 이적인데 그것을 갖다가 누구 개인 도와주기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어머니가 포두주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 말도 안하시고 포도주를 만들어 대령을 하면 그 포도주 만든 사건은 어떤 사건이 됩니까? 안방에서 남을 돕기 위한 개인적으로 행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예수님이 여인이여! 어머니가 아니에요. 이것은 공적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포도주 모자란 일이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잇습니까? 그것과 관계가 없이 포도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메시야 적인 차원에서 포도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만드시기는 만드셔요. 결국은.... 그런데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 이 첫 번째 이적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요?
그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적의 결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적이 일어나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표적으로서 이적이 보여주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혼 잔치에 주님께서 오셔서 이적을 베푸시므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적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변화를 싸인 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쓸모없는 것이 유용한 것으로 변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표적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주로 샌들을 신었고 길들이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서 손발이 쉽게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현관에 물을 담아 놓은 항아리를 놓아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물 두 세 통의 양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 여섯 개가 잔치 집에 준비되었습니다.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 손발을 씻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손발을 씻는데 쓰는 하찮은 물을 귀한 포도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물이 결혼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표적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마 21:42를 보면 주님께서 구약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해서 버린 것을 주님께서 손을 대시니 건축물 가운데 가장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면 쓸모없는 것들이 요긴한 것이 됩니다. 쓸모없던 사람들이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도 또한 우리 주변에도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였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대시니 가장 요긴한 주님의 수제자요 초대교회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대시니 가장 요긴한 이방인의 사도요 기독교 신학의 초석을 놓은 초대교회 대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와는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연약하고 무능하고 그저 저 자신만을 위해 허덕이며 살 수 밖에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 만나고 주님께서 제 인생에 손을 대시니 주 앞에 귀한 존재로 변했습니다. 감히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일군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한 요긴한 존재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쓸모없는 재목들을 다듬으셔서 정말 요긴한 도구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적의 가장 중요한 결과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셔서 요긴한 도구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염려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결혼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잔치에 포도주는 필수품이었습니다.
호남 분들은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되는 요리로 홍어요리를 칩니다. 대표적으로 홍어회를 들 수 있는데 흑산도에서 잡은 싱싱한 홍어를 발효한 독특한 음식입니다. 싱싱한 홍어 내장을 빼고 머리, 몸통, 꼬리 3등분으로 나눕니다. 이렇게 손질한 홍어를 김치를 익히듯 상온에서 항아리에 담아 숙성을 시킵니다. 이것을 꺼내서 껍질을 벗긴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상에 올리게 됩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 냄새 때문에 입에 대기도 힘들지만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어떤 생선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료가 됩니다. 코끝이 찡하고 입안에서 톡 쏘는 맛과 상큼함에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고급 음식입니다.
그래서 호남 분들은 그 잔치의 수준과 품위를 이 홍어회 맛으로 가늠한답니다. 홍어회가 고급스럽고 맛이 있으면 잔치 준비 잘했다고 말하고 반대로 홍어회가 별로면 잔치를 시원치 않게 평한답니다. 그래서 이 홍어회가 빠진 잔치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포도주 맛으로 그 잔치 음식을 평가했습니다. 고급 포도주요 맛있는 포도주가 나오면 손님들이 그 잔치를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품질이 시원치 않고 맛이 없으면 그 잔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도주가 없다면 아예 잔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주인들이 얼마나 염려가 컸겠습니까? 기뻐야 할 잔치가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
주님께서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했는데 보통 포도주가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연회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먹던 포도주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고급 포도주였다는 평입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마다 그 포도주 맛에 반해서 칭찬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주인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 좋은 포도주를 맛보니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잔치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염려와 근심 그리고 걱정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적의 또 하나 중요한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큰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위에 역사하셔서 기쁨이 가득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불신이 믿음으로 변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요한이 이 이적의 결과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오늘 본문은 1장 후반부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장 후반부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세례 요한을 따르던 두 사람이 예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 안드레의 소개로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이 주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섯 사람이 주님과 함께 가나의 결혼 잔치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사람은 주님의 영적 권위 때문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주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아직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고,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리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이적을 베푸시자 이들 다섯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적은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갖게 합니다. 주님께서 내 인생에 오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게 되면 이를 경험한 나는 더 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 이적의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더 큰 믿음이 일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적의 원인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어떻게 설 때 이적을 체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적이 표적으로 이적이 주는 중요한 또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 이적을 베푸실 때 사람들이 참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마리아이고, 다음은 그 집의 하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의 이적에 동참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아니면 주님의 이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리아의 믿음이 오늘 이적을 일으킨 우선적인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현대어 성경에서 이 본문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하는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가 이 문제를 예수께 의논하였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이 문제를 아들 예수와 의논하면 해결될 것을 믿은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5절을 보면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아들 예수와 의논한 뒤에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확신에 차서 하인들에게 이 분이 무어라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따르라고 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은 모르겠으나 예수가 손대시면 될 줄로 믿은 것입니다.
여기서 4절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주님께서 이 집에서 이적을 베푸실 생각이 없으셨고, 본격적으로 이적을 통한 사역을 펼치실 때가 아직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믿음이 주님의 이런 판단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님의 이런 계획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500년 초에 12살 된 루터는 부모를 떠나 혼자 아이스레벤에서 하숙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가대 연습실 밖에서 성가대원들이 연습하는 것을 듣고 따라했습니다. 지휘자가 안 됐어서 루터에게 물었습니다. "너 거기서 뭐하고 있니?" 로터가 대답했습니다. "성가대원이 되고 싶어서 노래 부르고 있어요."
지휘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성가대는 어른들만 들어올 수 있단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 때 루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써 주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렷한 눈망울로 답했던 이 소년이 훗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주님의 이적을 이루어 냅니다. 믿음이 주님의 역사를 열어갑니다.
복음서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주님께서 큰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물으십니다. "네가 믿느냐?" 그 때 아멘으로 믿음을 보일 때 주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둘째,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인들의 순종이 이 이적을 일으킨 또 하나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셨습니다. 분명히 항아리는 포도주를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닙니다. 손과 발을 씻을 물을 담아 놓는 용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포도주를 만들려고 한다면 여기에 물을 담아서는 안 됩니다. 하인들이 문제제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 소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구까지 항아리에 가득 채웠습니다. 적당히 2/3 정도만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섯 항아리가 있었는데 한 두 개만 채워도 됐을 것입니다. 여섯 항아리 모두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철저한 순종입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명령을 따르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대충 욕 안 먹을 정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명령을 따르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어느 고을에 두 명의 머슴을 둔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두 머슴 중 한 명은 주인이 보건 안 보건 상관없이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주인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고, 또 다른 한 명의 머슴은 그와는 달리 주인이 없을 때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지금까지 가장 잘 하던 것처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이를 모르는 척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데 주인은 이들 두 머슴에게 사경을 주기로 하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이보게, 자네들. 지금까지 우리 집 일 해주느라 고생이 많았네. 내일은 내가 자네들에게 세경을 줄 것이니 오늘 마지막으로 새끼를 꼬아 주겠나." 그러자 한 머슴은 아무 말 없이 짚을 가져다가 물을 추겨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 위해 일하는 것이니 잘 해주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또 한 머슴은 생각하기를 내일이면 이 집을 나가는데 새끼를 꼬라고 하니...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일을 하기는 싫고, 하는 둥 마는 둥 한발 정도 시작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이내 잠을 청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새끼줄 길이만큼 엽전을 꼬여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항상 주인 눈치만 살피던 머슴은 한 발 정도밖에 안 되는 새끼줄에 엽전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이 주님의 이적을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적은 그 안에 의미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가나의 결혼잔치의 이적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변화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이적을 베푸십니다. 오늘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쓸모 있는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염려를 버리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불신의 자리를 떠나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다른 하나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이적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으로 준비됐을 때만 이적을 베푸십니다. 믿음과 순종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이 외에도 더 많은 내용들을 가지고 말씀들을 나눌 수는 있지만은 이 정도 제가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정말 여러분들이 한 편으로는 마리아 같이 하나님께 계시 받은 자, 마리아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자, 마리아 같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그렇게 드러내는 사람, 예수의 증거가 있는 신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경험되는 자만 믿을 수 있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간구가 지금 내 기도가 별 볼일 없는 기도에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저희 기도가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그 온 나라 하나님 계획을 다 헤아려서 하는 기도는 아니에요. 하나님 내 병 고쳐 주세요. 내 자녀들 잘되게 해 주세요. 솔직히 뭐 세상 사람들 기도나 우리 기도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어머니의 기도는 “아! 이 집에 물이 떨어졌어. 그러나 당신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우리가 아는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솔직히 간구하는 건 사석화적인 거예요. 동정적인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걸 통해서 하나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시고 메시야를 선포케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고 제자들이 믿게 하는 그러한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은 때와 기한은 주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은 그 계획하신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기도했으니까 하나님께 맡겨드렸으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건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부터는 수심을 내려놓고 근심을 내려놓고 그냥 집에 가서 쉬세요. 기도하면 그 다음부터는 맡기면 되는 거예요. 근데 오늘 기도하고 와서 또 울고 그 다음날 기도하고 또 와서 울고 1년 전에 와서 울고 그러지 마십시오. 딱 기도하면 믿고 맡기고 또 기도하면 맡기고 마음에 확신이 안생기면 예수님처럼 계속 겟세마네 동산처럼 그 자리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기도할 수 있으나 마음에 딱 한번 확신이 든 것, 평안이 온 것은 그냥 놔두십시오. 차라리 메모를 딱 해 놓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이제 그 다음에는 주님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순종할 때에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는 역사를 주님의 계획대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구원 역사인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가나에 혼인잔치에 이 주님의 첫 기적의 의미를 잘 깨달아서 신앙의 본질을 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순종하셔서 물 떠온 하인과 같이 내가 그런 도구가 되고 내가 그런 주의 종이 되고 내가 그런 사역자가 되었을 때에 정말 그 가정에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 하인들은 칭찬을 안 받았다 하더라도 연회장으로부터 신랑이 칭찬을 받는 그런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 삶속에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정체성을 바로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 구주요 메시야 이신 것을
더욱 깊이 깨닫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저희 신앙이 되게 하여 주시 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저희들도 새롭게 창조된 것을 믿습니다.
향기를 날리게 하시고 멋을 드러내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윽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날리는 남성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밋밋한 물이 아니라 색깔이 있는 , 향기 있는 , 맛이 있는
새로운 사람들로 다 탄생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그와 같은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우리 주님께서 할 수 없는 저희들에게 할 수 있는 능력 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믿사오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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